설교요약 -고라 사람들의 교훈------8.11.2024
(시편 42: 1-11)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방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아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애절한 울부짖음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주변의 정적을 깨뜨리며 숲이 그 울부짖음에 떨리는 소리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온 몸의 촉각과 신경이 곤두섭니다. 이러한 긴장은 익숙한 곳에서 마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도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문화와 언어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늘 가슴 속에 어떤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장소에 대한 것이든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도 그 근원지에서 멀어졌을 때 이 시편의 기자처럼 외칩니다. 그러나 어떤 이데올로기 아니면 세상의 것이나 어떤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깜깜함 속에 있을 때, 신자가 구원과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은이는 자신이 부르짖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모르는 또는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아니고 그는 혹은 그들은 한 번 하나님의 도움과 그 친밀함을 경험했던 사람이며, 그러므로 공허하게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되었을 때, 우리가 이미 한 번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을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위의 본문을 현대어로 재 해석한다면, 주 하나님, 제 영혼에 당신을 향한 그토록 큰 갈망을 일깨워 주십시오. 당신은 저를 아시고, 저는 당신을 압니다. 제가 당신을 찾고 발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나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신실하신 하나님, 저는 결국에는 당신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마귀와 세상과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제 영혼은 하나님을 갈구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구합니다. 언제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까요?
하나님에 대한 갈증, 우리는 물이 없을 때 육체적 갈증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행복과 삶의 충족에 대한 열정적인 갈증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신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도 익숙한가요? 우리의 단순한 관념이나, 생각이나 이상에 불과한 신은 결코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살아 계신 하나님, 모든 참된 삶의 신이자, 생명의 기원을 갈망합니다. 그러면 신은 언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 주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지점에 도달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목표인 영원한 삶 이란 실재 자체는 '신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에게서 그것을 봅니다. 일단 거기에서 그것을 찾으면, 우리는 그것을 영원 속에서 완벽하게, 명확하게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7: 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 우리는 당신을 뵙기를 원합니다. 구름을 뚫고 나오는 태양처럼 바로 당신의 은혜로운 얼굴을 보고자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위의 본문에서 묻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불안하게, 절망적으로, 또는 비웃듯이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죽음, 죄, 곤경, 전쟁 또한 용기, 권능, 명예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질문이나 조롱에 대해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어서 종종 어떤 상황에서는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갈증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같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세시는 눈물이기도 합니다(시편56:9). 만일 누가 당신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묻거든 우리는 삶과 죽음, 부활에서 하나님의 참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명하신 사람을 가리키는 것 외에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에서 그는 우리의 생명이 되셨고, 죄에서 그는 우리의 용서이시며, 고난에서 그분은 우리의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전쟁에서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사람을 가리키며 말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바로 신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 이 세상에서 신과 신의 권능과 사랑을 볼 수 없어 유혹을 받을 때, 단호하게 당신을 바라보도록 주여, 도와 주세요.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목표를 찾는 자들에게도 이 축복을 찾도록 해 주십시오. 신자의 마음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리를 찾는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참되고, 그분의 행위는 분명하며, 그분의 거룩한 입은 모든 적을 이길 힘과 근거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억하며 내 영혼을 쏟아 붇도록 하세요. 그래서 여기 있는 나도 나 자신과 내가 부르짖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슬픔이 우리를 삼키는 것보다 차라리 외로움 속에서 마음을 쏟아내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외로울수록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교회를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떠올리고, 교회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서 자라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사람은 교회를 부릅니다. 여러분이 성전이 되고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내가 믿음과 기도를 나눌 수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보내주시고, 그들이 짊어진 모든 것을 그들과 함께 서로 감당할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교회, 당신의 말씀, 그리고 거룩한 주님의 만찬으로 나를 인도해 주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빛이 되도록 하세요.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서 평화를 찾는, 당신의 열렬한 사랑이 구세주를 위해 타오르게 하십시오.
처음 받았던 말씀을 기억하고, 굳게하고, 회개하여 하나님 품안으로 뛰어드세요!
그는 머리, 우리는 지체
그는 빛, 우리는 거울
그는 주인, 우리는 가족
그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그의 것
내 영혼아, 네가 왜 낙담하며, 네가 왜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는가?
하나님을 바라라, 내가 다시 그를 찬양하리니, 그가 그의 얼굴로 나를 도우심이로다.
슬픔과 불안은 잠시, 그것들이 내 영혼을 사로잡아서는 안 됩니다. 나의 영혼에게도 말하고, 걱정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세요. 말하세요, 자신의 마음에게; '하나님을 바라라!'
하루하루 더 많은 고통과 환난을 끌어 당겨 걱정하지 말기로 하지요, 모든 것이 빨리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마세요.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라! 그 상황을 바꾸려하지 마세요, 먼저 받아들이세요...
하나님의 얼굴, 곧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히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이다'라고 말하세요.
예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다면 당신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그를 내게서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나에게서 하늘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믿음으로 나에게 주신 하늘은 위로가 슬픔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위로 받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림으로써만 지지를 찾게됩니다.
'아버지, 당신이 저를 외국으로 보내실 때, 제 영적 집에 대한 이 건전한 갈망을 간직하도록 도와주시고, 제 생각을 당신이 우리 모두를 위로하실 영원한 집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상실한 마음은 세상의 바다의 소리로서 묘사되어 폭포와 천둥소리에; 세상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덮쳤다고 표현합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삼키고자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지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과 바다가 복종하는 사람(마태복음 8:23-27), 바다를 지휘했고, 바다가 고요해진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나를 바다에 가라앉히지 마십시오, 파도 가운데 내가 쓴 죽음을 마신다면 주님, 당신의 말씀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의 구원의 손을 저에게 뻗쳐 주십시오. 낮과 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존재하는 시간은 얼마나 길고도 위로받을 수 없는지요.
때로 우리는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합니다. '왜 나를 잊으셨습니까? 왜 내가 슬픔 가운데 걸어야 합니까? 모든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보일 때, 모든 미래의 희망이 깨어질 때, 큰 사건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인생의 목표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갔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이 누구에게 제기되는 것인가요? 나는 절망하지만 하나님은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불충실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마음에게 말하세요, 오 주여, 나의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현재의 나의 삶과 내세에 내가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되어 주십시오. 내가 당신의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여, 주님이시여, 아무것도 나를 당신에게서 몰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의 가르침으로 나를 지키소서, 주님,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굳게 서게 하소서. 그러면 나는 당신께 감사하리이다. 끝으로 성도는 교회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은 구원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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