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우리는 거울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내면 앞에 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타인의 결함은 꽤 잘 보입니다. 남의 교만, 남의 이기심, 남의 위선은 그리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눈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시야가 갑자기 흐려집니다. 신기할 정도로요.
영적인 기형은 육체적 기형보다 훨씬 감추기 쉽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감추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위험한 이유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예레미야 17:9-10)
자신의 민낯을 본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길을 굳이 택하려 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사순절은 바로 그 편안함을 조용히 흔드는 계절입니다.
사순절이 사십 일이나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진실에 이르는 길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좁고, 가파르고, 생각보다 많이 아픕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앞에 홀로 섭니다. 어떤 환상도, 어떤 자기기만도 없이. 그렇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닙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어둡고 낯선 길을 함께 걸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를 그 길로 이끄신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13)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로마서 7:19)
"저는 이미 그 경험을 했는걸요." 거듭난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구원받은 우리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 그게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거듭난 사람도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벗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안주하는 쪽으로,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쪽으로 조용히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깊이 돌아보고, 그만큼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향으로요. 거듭난 양심이라 해도 인간의 몸 안에 있는 한, 영적인 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깨어나야 합니다.
"끊임없이 깨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데살로니가전서 5:6)
우리 시대는 불편함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기 성찰이 자기 학대처럼 오해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순절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순절의 목적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악을 미워하는 건강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 죄에 대한 진심 어린 통회, 그리고 은혜에 대한 절실한 갈망. 이 세 가지가 살아날 때, 비로소 영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7:10)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것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47)
그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죄의식 → 죄책감 → 통회 → 용서 → 감사 → 사랑의 행위
거꾸로 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사랑의 동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용서가 없으면 감사도 없습니다. 통회가 없으면 용서에 이르지 못합니다. 죄책감이 없으면 통회가 없고, 죄의식이 없으면 죄책감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죄를 뉘우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조차 뉘우치지 않는 시대, 용서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시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영적으로는 깊은 위기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고린도후서 7:10) 사순절은 바로 그 거룩한 근심을 다시 회복하는 계절입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이번 부활절, 우리는 빈 무덤 앞에 서기 전에 먼저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비로소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본 사람만이, 부활의 아침을 마치 이 세상에 막 태어난 것처럼 새롭고 환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낡은 채로 오래 살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태어나 오늘을 살 것인지. 이 사순절이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