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2:2)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지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죄들을 지적하고 공격을 퍼붓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선한 일이며, 설교자의 의무입니다. 생각건대,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바라는 대로 살아가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거나, 죄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 시끄럽도록 많은 이 세상에서 자칭 그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변화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왜 인가요? 인간이 연약해서 생활 속에서 범하는 죄들에 대해서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인가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첫 번째 서신을 썼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인간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다툼, 당파 분열, 법정 소송, 재산 분쟁, 근친 상간부터 매춘까지 다양한 인간들의 죄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혼전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부부관계, 과부생활, 이혼, 채식주의, 성찬식에서의 술 취함, 방언, 죽음과 장례식에 대하여 서술하였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받고, 교회에서 전교인의 전도를 진행하는 것 등에 관해서 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2:2) 외에는 그들 중에서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하면서 편지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이 가장 실용적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즉각적으로 지금 이곳, 이 시간에 바로 전해짐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더럽히는 음행, 그 음행 하는 자들을 내쫓으라, 너희 몸이 성령의 전이다, 결혼의 도의, 결혼 서약을 지켜라, 미혼 남녀들과 미망인들에게 10장까지 대부분은 성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무질서, 외설, 호색에 젖어 있는 우리는 현대의 고린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누구든지 성적인 영역에서 손상을 입지 않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세대에 믿지 않는 이들은 차치하고라도 특히 믿는 이로서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과 신앙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무지한 부모와 설교자들로부터 많은 거짓되고 해로운 사상을 주입 받은 수많은 젊은 남녀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결혼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두려움과 죄책감, 수치심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남편과 아내가 될 수 있을까요? 손상되었나요? 예,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복음에는 감정적으로 상처받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가 있나요? 그것이 그들 모두에게 치유와 변화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회 문에 자물통을 걸고 기독교 신앙을 떠나 그저 우리에게 주신 ‘복음’ 에 대해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쳐 주실 것들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습니다’. 바울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롬8:26) 성령님에 관해 서술했습니다. 영어 성경 현대 번역판의 대부분은 ‘연약infirmities’이라는 한 단어 대신에 ‘약함weaknesses’ 또는 ‘절름발이cripplings’을 사용합니다. 그 ‘연약’의 단어 ‘아스테네이아’의 유래는 ‘아스테네스’로 질병, 아픔에서 온 단어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죄)은 마치 병적인 것 같습니다. '도움sunantilambanomai'이라는 단어 역시 간호사가 치유 과정을 돕는 방식을 암시하는 의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동사의 문자적인 의미인 ‘상대에게 거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치유를 위해 상호 참여하면서 우리와 함께 하는 파트너요, 조력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상된 감정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하여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4:12) 아무것도 안하고 우리는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아니요, 성령은 진실로 다른 한 편에서 우리의 문제를 파악하는 신성한 상담자, 신성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 앞의 내담자로서 그리고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거룩의 목적에 맞는 많은 제안들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말씀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손상된 감정의 치유들을 찾기 위해 전체적으로 따라야 할 일반적이고 성경적인 원칙을 제안하겠습니다.
1.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세요: 잔인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정직하세요, 하나님의 은혜로 끔찍하고 숨겨진 어린 시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 맞서십시오. 비록 당신 안에 있는 감정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이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고백하세요. 어떤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고백할 때까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야고보서 5:16).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깊이 나눌 용기가 부족해서 깊은 내면의 치유를 놓치기도 합니다.
2. 해당 문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세요: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피해자였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등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당신의 반응은 어떤 가요? 원망하고 미워하며 지금까지 회피하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은 어떤 가요? 예를 들어 성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내 가족은 나에게 성에 대해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자라서 이 세상에 순진하고 무지하게 들어가면서 문제에 빠졌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두 번째 아니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면 누구의 잘못인가요? 유전, 환경, 부모, 교사, 친구로부터 겪는 모든 일들 그리고 인생의 모든 장애 등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짜인 관계 속에서 당신은 통과하여 나와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고, 책임을 받아들일 때까지 상처는 결코 치유될 수 없습니다.
3. 치유 받고 변화 되고 싶은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예수님께서 삼십팔년 동안 앓는 병자에게 이렇게 하십니다(요한복음 5:6). ‘당신은 정말로 치유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단지 당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가요? 당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의 동정을 얻기 위해 이용하고 싶습니까?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도록 목발을 사용 하시겠습니까? 절고 있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주님 아무도 나를 못에 넣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하지만 모두 나보다 먼저 거기에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치유되기를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기보다 남을 비난하고 싶어하는 ‘바보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설교자로서 때로는 하나님 말씀을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스스로 물어봅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치유되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진정으로 이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4. 당신의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용서하세요: 책임을 직면하는 것과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실제로 같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용서한다면 마지막 나를 변명하는 이유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벗겨지고 비난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직면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같은 행동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동시에 수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깊은 용서가 있기 전에는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5:23-25).
5. 자신을 용서하세요: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결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진술은 오만하며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했는데 당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나요? 하나님이 용서하심은 당신의 죄를 하나님의 용서와 망각의 바다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마 위에 ‘죄 없음’이라고 적었습니다. 하나님이 법정 선언을 한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잊으신 것을 지울 권리가 없습니다. 그 분의 전지하심이 당신의 죄를 잊은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6. 당신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성령님께 간구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롬8:26)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기도하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십니다. 때때로 성령께서는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보내시어 상담자의 형태나 신실한 성직자를 사용하십니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진짜 문제점을 깨닫게 해주는 삶의 어떤 사건을 통해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문제를 깨닫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때때로 잘못된 것을 기도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할 때도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약4:3). 기독교적 상담사, 목사 또는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과 함께 성령님께 보여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믿는 이들의 부모들에게 고함 (5) | 2024.08.29 |
|---|---|
| 죄 2 (0) | 2024.08.27 |
| 다시 시작되는 covid의 성경적 대처 (0) | 2024.08.13 |
| 교회란? (0) | 2024.08.12 |
| 8월의 첫째 주 편지 (0) | 2024.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