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이야기

지혜의 시작

Sardis 2025. 2. 2. 13:09

지혜의 시작

인류 역사상 종교 없이 살아온 부족이나 민족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시인들이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자신들보다 더 강한 존재인 '신'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원시인들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규칙과 금기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양심입니다.

 

대부분의 원시인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꼈고,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화해와 희생의 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삶은 늘 신비롭고 경이로우며, 그 끝에는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시인들은 육체의 죽음이 곧 존재의 끝이 아님을 믿으며, 이 신비를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원시 종교는 무지와 두려움에 대한 방어 기제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자연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면 종교도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일부 종교적 믿음은 과학의 빛 앞에서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이 지식으로 가득 차 있고, 두려움과 불안이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더 깊은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인간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종교는 단순히 무지나 두려움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더 높은 목적을 찾고, 창조주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죽음을 넘어서는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갈망이 쉽게 잊히곤 합니다. 우리는 기술과 편리함 속에 둘러싸여 있고, 수많은 정보와 자극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뉴스, 스마트폰, 인터넷은 실제 경험 대신 간접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덮어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종교의 필요성을 덜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삶에 대한 고통과 아픔 그리고 실제적인 경험이 결여된 이 삶에 대한 자세들을 우리는 우리의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주의가 요구되며 이러한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에서 오는 고립에 관심을 갖으며, 또한 이해가 상충되는 순간에 완전한 적대적 관게로 돌아가는 아주 얕은 경제적 이익이 앞선 인간으로 이 숭고한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에 참으로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종교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은 이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존재합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많은 답을 줄 수 있지만, 모든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멈춰 서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혜의 시작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그것이 오히려 더 큰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아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지혜의 문 앞에 서게 됩니다.

 

각성을 촉구하면서, 청년들이여 깨어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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